#1. 라싸에서 남초호수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라싸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지프차를 빌려 남초호수를 가기로 결정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라는 짧은 설명만으로도 상상이 되는 장관에 가슴이 설레어오기 시작했다. 해발 4700m가 넘는다는 그 곳을 가기 위해 우리는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이미 고산병의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 나는 우선적으로 아스피린을 챙겼으며 추위를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을 줄 중국에서 만원을 주고 산 침낭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는 마켓에 가서 간단히 가져갈 만한 주전부리들이 있는지 둘러보다가 값이 싼 티벳식 스낵을 몇 개 집어 들고는 땅콩 맛과 초콜릿 맛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데 같이 가기로 한 영국커플은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의 미국산 스니커즈를 수북이 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러운 마음이 강하게 밀려왔지만, 이런 것에 자존심 상해하거나 부러움을 살 필요는 없다고 강하게 마음을 먹고는 아쉬운 데로 초콜릿 맛이 나는 과자를 두 개 집어 들고는 계산을 했다.
가이드 겸 운전사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는 비록 짧은 영어 밖에 할 줄 몰랐지만, 왠지 듬직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타고 갈 지프차는 그 운전사만큼 듬직해 보이지 않았다. 과연 몇km나 뛰었는지 확인해보니 이미 20만 km를 넘나든, 인간으로 치자면 95살 되신 나의 할아버지뻘 되는, 폐차 되기 직전의 컨디션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운전사는 그 짧은 영어로 연거푸 “No problem”을 외치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눈치만 보다가 결국은 야크모모(야크고기가 들어간 티벳식 만두)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었다.
다음날 아침, 운전사는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나타났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에 사시나무 떨 듯 바들거리던 우리들은 차 안으로 뛰어들 듯 급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히터의 열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구나’
#2. 동이 트고 날이 밝자 티벳 특유의 투명한 하늘이 펼쳐졌고, 구름은 쏟아져 내릴듯한 기세로 하늘에 버겁게 매달려 있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멋진 장관을 한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차가 덜컹거리더니 길 중간에 서버렸다. 운전사가 시동을 몇 번 걸어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리는 것이었다. 조용히 스니커즈를 나눠먹던 영국커플도, 열심히 카메라셔터를 눌러대던 나도, 차에서 내렸다. 차를 열심히 살피던 운전사는 차 안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하나 꺼내오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못 이었다.
못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우리는 궁금한 마음에 그의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자그마한 못으로 여기저기 찔러보기도 하다가 수많은 나사들을 돌려보기도 하더니 결국엔 정체 모를 엔진의 일부분을 하나씩 분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못 하나를 가지고 말이다.
우리는 사태의 심각함에 잠시 주춤했지만 누군가의 감탄사에 그곳을 돌아보았고, 모두가 동시에 바라본 곳에는 쏟아져 내릴듯한 구름들 사이로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Oh, My God!”을 외쳤다.
그리고는 각자의 카메라를 들고 와서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생각이라도 난 듯 남자들은 동시에 한 곳으로 몰려가서는 여자들의 눈을 피해 소변을 보기 시작했고, 왠지 모를 시원함에 우리는 부끄러운 마음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운전사는 어느새 차를 고치고는 시동을 걸고 있었고, 우리는 그 후로 그를 ‘마이더스의 손’ 이라 불렀다.


#3. 남초호수는 쉽게 근접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해발 6100m의 탕구라산을 지날 때에는 또 다시 고산병의 대표증상인 두통이 시작되었고, 멋지게 펼쳐진 설산의 아름다운 풍경들도 더 이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들은 세시간이면 도착한다는 거리를 다섯 시간이 지난 점심때가 되어서야 마침내 우리는 남초호수에 도착했다.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라싸와는 확연히 다른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그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차에서 서둘러 내리고 있었다. 약간의 살얼음이 낀 호수 너머로 백색의 설산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며 그 설산 위로는 서럽도록 투명한 하늘과 거칠게 부풀어오른 구름 떼들이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 내듯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었구나’
하늘과 가까워 ‘하늘호수’ 라는 별명을 가진 그 곳, 티벳인들이 이 곳의 물이 마르면 티벳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신성한 바로 그 곳에 내가 서 있었다.



이곳에서 이틀을 보내는 동안 난 심한 감기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추위는 살 속을 에이 듯 뼈 속까지 깊숙하게 파고들었고, 밤새도록 고산병의 증상과는 조금 다른 두통과 고열에 시달려야만 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어 텐트 밖으로 나와 빛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어둠의 한 가운데에 섰다. 어둠에 익숙해지는 순간 난 내 앞에 펼쳐진 놀라운 모습에 경직되고 말았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별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던 있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서 본 적이 있는가? 경험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장담하지 말라.
그 곳엔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억누르지 못한 체 이유도 없는 서러움을 눈물로 쏟아내고 있는 작고 초라한 남자가 외로이 서 있다.





최근 덧글